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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시대, 중간치기 기업들 설 땅이 없다

매경이코노미 | 09.11.07 14:39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지 1년여가 지났다.
세계를 뒤흔든 위기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던 기업이 쓰러져 나가는 동안,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은 생존에 더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불황으로 본격적인 '승자독식(勝者獨食)' 시대가 열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반도체와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업종에서 상위 3~4개사로 시장이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다. 여기에는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한국 대기업들도 포함돼 있다.

IT와 중공업뿐 아니다. 소비재에서도 살아남은 강한 기업들이 몰락한 기업들의 이익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기업들이 앞으로 치고 나오는가 하면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은 생존에 급급한 모양새다. 승자독식 시대의 원인을 진단하고 전망을 살펴본다.

'자동차와 금융업계에서 영원한 강자로 불리던 제너럴모터스(GM)와 씨티그룹은 다우지수에서 퇴출됐다.'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생존한 골드만삭스는 지난 3분기 31억9000만달러에 이르는 순이익을 냈다. 이는 전년 동기(8억4500만달러) 대비 3배를 넘는다.'

세계 금융위기와 경기침체 속에 업종별 산업구조가 지각변동하고 있다. 제조업과 금융업을 막론하고 절대강자들이 몰락한 반면,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은 최고 실적을 거두며 '승자'로 군림하는 모양새다.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경기나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시기가 지나면 항상 점유율을 확대하거나 시장지배력을 키워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업이 나오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구조조정 이후 살아남은 기업들은 경쟁 업체의 퇴출로 전성기 못지않은 실적을 거두고 있다.

금융위기로 '대마불사' 무너져

한국을 대표하는 메모리반도체시장에선 '치킨게임'이 끝나면서 삼성전자와 하이닉스가 승자와 생존자로 남았다. 금융위기 이후 지난 1년간 독일의 키몬다가 파산하고, 후발 대만 업체들은 수천억원대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D램 시장점유율은 증가일로다. 지난 1분기 기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34%와 21%로 양 사를 합하면 55%에 이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D램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 향후 2~3년 동안은 국내 기업들의 독보적인 지위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LCD 분야의 LG디스플레이는 3분기 5조9744억원의 매출과 904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고다. LG디스플레이 측은 "불황에도 8세대 라인 등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결실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휴대전화 부문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1위 기업 노키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LCD와 PDP를 포함하는 평판TV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점유율 1~2위를 달린다.

철강 분야에서도 세계 1위 업체인 아르셀로미탈이 지나친 확장 경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반해 포스코와 신일본제철 등은 실적에서 선전하고 있다. 포스코는 2분기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한 것은 물론 고로 단위면적당 쇳물 생산량이 경쟁사 대비 1.5배에 이를 만큼 원가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황훈진 AT커니 파트너는 "후발주자들이 규모가 큰 기업을 따라잡으려면 거시경제변수 등 메가트렌드의 변화가 필요한데, 지난해 리먼 사태 이후가 그렇다"면서 "이런 경제위기가 지속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일본 등 경쟁 상대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로 불리는 월가의 사정도 마찬가지.
앞서 골드만삭스의 3분기 매출은 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60억4000만달러의 두 배에 달했다. 생존에 성공한 JP모건체이스 역시 3분기 순이익이 35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배에 달했다. 승자독식이 그대로 드러난 수치다.

김종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번 금융위기는 단순한 경기 순환상 위기가 아니라 세계적인 산업구조 변화라는 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면서 "단순히 규모가 아니라 기술과 인력 등 핵심역량은 물론 다른 기업과의 네트워크 등을 잘 갖추고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실제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기업실적에 영향을 미친 지난해 4분기 이후 대부분 업종의 실적이 악화되고 업종 내 기업 간 격차가 커졌으며 실적 상위기업과 하위기업의 위상도 많이 역전됐다"고 덧붙였다.

과감한 투자 & 글로벌 진출이 승리 요인

업종별로 기술과 자본력을 갖추고 있는 기업들이 불황기에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반면 후발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 반면 후발기업들과 앞선 기업들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소비재 내수시장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 소비재인 화장품업계에선 선두권인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점유율이 높아졌다. 두 회사의 점유율은 2006년 49.2%에서 2007년 50.6%, 지난해 53.1%로 점차 커지고 있다. 올 상반기에도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 모두 10%가 넘는 매출 상승률을 기록, 이 같은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승자독식 시대가 가속화하면서 세계 진출이나 기술개발 등에서 뒤처진 기업들은 더욱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한국은행이 국내 16개 은행의 여신업무 총괄담당 책임자를 직접 조사해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형태 서베이'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3분기 신용위험지수는 31로 대기업의 9에 비해 크게 높았다. 가계까지 포함한 전체 평균 24보다 높은 수치다. 또 올해 4분기 중소기업의 대출수요지수는 3분기 16에서 19로 상승하는 등 높은 수준이다. 대기업은 같은 기간 3에서 6으로 상승하겠지만 절대수준은 낮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기업은 회사채 발행 여건 등이 개선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현금 흐름은 크게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수시장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중견, 중소기업들의 경우 금융위기와 시장 개방 등이 맞물리면서 설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건설업계의 경우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8월까지 200곳 넘는 업체가 부도를 냈다.

실제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국내 중견기업과 중소부품업체들은 영업이익률이 사실상 '0'일 만큼 힘들다"면서 "장기 생존을 위한 기술 개발이나 설비 투자 등 여력이 없어 상당수가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국내 시장에 안주했거나 핵심역량 대신 부동산 가격 상승 등에 의존했던 기업들은 설 땅을 잃고 있다. 황훈진 파트너는 "제조업 기반으로 국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동시에 역세계화로 내수시장 경쟁이 심해질 수 있는 만큼 각각의 분야에 정통한 중소기업들이 네트워크를 만드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3~4년간 승자독식 이어질 듯

승자독식 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데다, 이번 위기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이 시장점유율과 이익률 등에서 우세를 점해 나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 승자로 남은 기업들의 적응력이 이미 검증된 만큼 향후 기업경쟁력을 가늠할 기업 간 네트워킹 능력이나 인수합병 등에서 한발 앞서나갈 공산이 크다.

김종년 수석연구원은 "앞으로 글로벌 100대 기업 중 30~40개 이상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면서 "경쟁력이 약한 기업부터 밀려나 일부 업종에선 과점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 연구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시장에 의한 퇴출과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도록 해야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병수 기자 bs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30호(09.11.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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